최기창의 민화: 크기의 역설
고동연 (미술사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민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편으로 조선시대 왕립미술원인 도화원이 폐기된 후로 아예 전문 화가들이 일반인을 위한 그림 민화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이외에 민화가 흥미로운 점은 특정 장르 위주의 민화는 이미 다양한 예술적 역량을 결합하고 있다. 기존의 엘리트 계층을 위한 그림이 자연을 관조적인 입장에서 도덕적인 수양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에 반해서 민화에서 자연은 친숙하면서도 즉각적이며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연은 인간의 일상적인 바램을 담는 장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최기창이 다루고 있는 호피도의 경우 민화의 대표적인 장르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21세기 일본의 식민 정부가 대대적으로 말살하기 전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였다. 무서운 맹수의 표피를 자세히 그리는 행위는 흡사 동물 벽화를 그리던 이들이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호피는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이에게 기운과 에너지를 오히려 되돌려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유머와 역설은 민화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더치의 장르화처럼 한국화의 중요한 전통 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크기의 역설, 즉 세밀한 것을 확대해서 보는 일상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최기창의 최근 민화 시리즈는 어떻게 서구 미술을 습득한 작가가 자신의 전통을 재해석하는지도 보여준다. 흡사 르네상스 시대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Shaped Canvas 내부의 민화의 친숙한 소재를 담거나 추상화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거대한 화면을 호피무늬로 채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테헌과> 유사하게 과거의 예술 장르, 신화, 무속적인 메시지를 현대적인 언어로 행보가 현대미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Kichang Choi’s minhwa: The paradox of scales
Koh Dong-Yeon (Art historian)
In recent years, interest in minhwa (Korean folk painting) has been growing both in Korea and abroad.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Dohwawon— the royal painting bureau of the Joseon Dynasty—professional painters began to devote themselves entirely to producing minhwa for the general public. What makes minhwa particularly intriguing is that certain genres within it integrate a wide range of artistic skills and sensibilities. Unlike paintings created for the elite class, which viewed nature through a strictly contemplative lens as a means of moral cultivation, nature in minhwa appears more familiar, immediate, and at times even fearsome. Additionally, minhwa serves as a medium for expressing people’s everyday wishes and desires. For instance, hopido, or tiger-skin paintings, which are the focus of Kichang Choi’s recent work, represent one of the most prominent genres of minhwa.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when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eradicated them on a large scale, tigers—along with Siberian leopards—were the most fearsome predator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meticulous act of painting the pelt of such a terrifying beast may have served as a way for the artist to overcome their fear of the creature, much like prehistoric animal cave paintings. Furthermore, the tiger skin can be seen as symbolizing the return of vigor and energy to both the painter and the viewer engaging with the artwork. Humor and paradox are notable traits of minhwa and are also significant features within the broader tradition of Korean painting, similar to genre painting in the Dutch tradition. Notably, Choi’s recent minhwa series also exemplifies the paradox of scale—enlarging the minute details to reveal the everyday. This series demonstrates how an artist with a background in Western art can reinterpret his cultural heritage. His works may include familiar minhwa motifs on shaped canvases that evoke Renaissance-era genre scenes, or they may fill large canvases—similar to those favored by abstract painters—with tiger-skin patterns. Like the globally popular animated film “The Tale of the Princess Kaguya,” his practice modernizes past artistic genres, myths, and shamanistic messages, translating them into a contemporary visual language.
자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길을 찾기 위해 표류하는,
글 권태현
부표는 물에 떠 있는 표식입니다. 그것은 드넓은 바다에서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특정한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한 지점을 알리기 위해 떠 있기도 합니다. 파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의 표면에서 부표는 자신의 위치를 고정하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지닌 바다에서 부표들은 그 힘에 몸을 맡긴 채 떠 있죠. 망망대해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에서 부력을 얻으려면 물보다 밀도가 낮아야 합니다. 무언가 표지 해야 하기 때문에 견고하지만, 무조건 단단한 것이 아니라 형태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세심히 조정된 밀도가 필요하죠. 의도된 가벼움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부표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파도를 따라 넘실거리죠. 어딘가에 꽉 매여있다면 움직이는 바다에서 부표는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가볍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고정되기 위해서 움직이는 역설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술가 최기창의 2009년 작업부터 가장 최근 작업까지 돌아보는 전시에 붙은 ‘부표들’이라는 낱말은 다양한 층위에서 그 자체로 부표가 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업들은 최기창이 만들어온 세계의 영역을 표지 하는 일종의 부표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부표의 속성을 통해 그의 작업 방법론을 유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최기창은 가벼워 보이는 대상의 밀도를 세심히 조정해 전혀 다른 영역으로 밀어붙이곤 합니다. 유행가나 군가에서 다뤄지는 너무도 가벼운 사랑 이야기를 이상한 방식으로 응축시켜 사랑이라는 근원적인 개념을 돌아보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방법론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초기작 〈반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반달〉은 보름달 이미지가 붙어 있는 장치인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온전한 구의 형태가 아니라, 반이 잘린 구 형태를 가지고 있죠. 얼핏 실없는 농담처럼 보이지만, 학습된 이미지와 언어의 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반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죠. 달은 항상 어느 쪽도 상실하지 않은 채 온전한 형태로 지구 주변을 돌고 있지만, 지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까요. 작업이 자아내는 헛헛한 웃음은 시나브로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됩니다.
가벼운 대상을 무거운 성찰로 뒤바꾸는 작업은 〈루돌프〉에서도 이루어집니다. 1945년 미국에서 출시된 애니메이션 〈루돌프 사슴코〉(Rudolph The Red-Nosed Reindeer)의 영상을 그대로 사용한 작업이죠. 잘 알려진 루돌프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인데, 1940년대 특유의 프로파간다 풍이 인상적입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돌아보면 순록들이 군대처럼 묘사되는 모습이나, 어린이로 그려지는 루돌프가 산타클로스에게 동원되는 모습이 기이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최기창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사용하면서, 오로지 루돌프가 밝은 코를 사용하면 할수록 그의 눈이 점점 밝아지게 만드는 간단한 조작으로 개입합니다. 후반부에 루돌프가 산타클로스에게 상을 받는 장면에서 그의 눈은 무섭게 빛나며 화면을 가득 채워버리죠. 내용은 그대로인데 영상은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합니다. 무언가 작은 요소를 과도하게 응축시켜 파열시키는 힘에 대해 생각합니다.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업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에서는 밀도를 이상한 방식으로 조정하는 방법론이 더욱 극적으로 사용됩니다. 그것은 국가, 군가, 유행가와 찬송가 약 1,500곡에서 추출한 사랑에 대한 가사를 8m가 넘는 벽에 새겨 넣은 작업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것, 성스러운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 등 온갖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계속 늘어놓으니 개별적인 노래의 가사 안에서는 평면적이었던 사랑 이야기가 파열적으로 산란되면서 사랑이라는 문제를, 혹은 세상이 사랑을 다루고 있는 방식 자체를 재고하게 됩니다. 이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1층의 전면 창 전체를 반짝이는 시트로 뒤덮는 방식으로 재 제작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화려하게 빛나지만 내부에서는 그림자로 드리워지는 역설이 작업을 또 다시 다른 각도에서 흥미롭게 작동시키죠.
이런 식으로 원래 맥락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요되거나 싸구려 감성에 불과했던 사랑이더라도 최기창의 작업에 차용되면 기이한 무게를 가지게 됩니다. 그 외에도 철판에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를 짧게 옮겨오는 연작은 “아,” 같은 단말마로 그것을 응축하곤 하는데, 이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 글자가 부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녹슬고 있는 사랑의 노랫말은 영원이나 맹세 같은 것의 허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철이 한번 녹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그 사물의 속성 자체를 바꾸어 나간다는 점이 핵심적입니다. 단지 표상적인 언어나 이미지의 차원이 아니라, 물질적인 차원에서 사랑의 근원적인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철판에 적힌 모든 구절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끝이 나는데, 이는 철판이 계속 녹슬어가는 것처럼 결코 완결되지 않고 이어지는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술 작업의 차원에서도 완성이라는 고정된 상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물질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연결되기도 하죠.
최기창의 작업에서 녹이 슨 철판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피에타〉는 그의 작업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표 중 하나로 둥둥 떠 있는 작업입니다. 최기창의 〈피에타〉는 미술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표라고 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물론 그것을 녹이 슨 철판에 120개 조각으로 분절해서 말이죠.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피에타〉가 아닙니다. 그것이 미술사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판, 그러니까 너무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사진이라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바티칸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긴 줄을 서서 저 멀리 유리 너머에 있는 실제 하는 조각-물질로서의 〈피에타〉가 아니라, 하나의 렌즈로 특정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 〈피에타〉는 그것을 둘러싼 우리의 선입견과 서양 중심 미술사라는 체제 전체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수없이 유통된 그 이미지는 최기창의 작업에서 120개 조각으로 분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이 2m가 넘는 크기로 확대되어 전시장의 스케일에서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망점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 형태가 추상으로 수렴해 버립니다. 녹슨 이미지를 통해 특정한 상징으로 뒤덮인 작품이 아니라, 닳고 닳은 이미지로 그것을 다시 인식하면, 그 이미지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구축을 다시 끄집어 감각해 낼 수 있게 됩니다.
미술사 도판을 차용하는 작업 이외에도 자연의 연필로서의 사진을 인화가 아니라, 철판에 녹슬게 하는 방식으로 가지고 오는 연작은 사물과의 협업이라는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럭키드로잉〉 연작에서는 이러한 지점이 더욱 명확해지는데, 작가는 그것은 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작업에서 자신이 물러나 물질들에게 구성을 위탁하는 것입니다. 〈드로우 드로잉〉에서는 자석을 철판에 던져서 두 물질이 만들어내는 구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작업하기도 합니다. 화면을 엄격하게 조정하기보다는 일부러 통제할 수 없는 구석을 만들고, 그것과 협의를 해나가는 것이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론도 마찬가지 입니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하면 안료를 얹는 면 가장자리에 자국이 남게 되죠. 〈순환하는 밤〉과 같은 연작은 통제할 수 없는 얼룩이나 흔적을 그대로 작업으로 내세웁니다. 명확한 방향을 스스로 제시하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길을 잃고 거기에서 무언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초기작인 〈슈퍼스타더스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업에 계속 쌓이는 먼지를 이물질로 취급하여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예술 작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여기 있습니다. 단지 유물론이나 행위자, 객체지향 같은 말로 포착할 수 없는, 특유의 예술적 방법론이 여기에서 발견됩니다.
최기창은 부표를 띄웁니다. 부표를 띄우는 것은 바다라는 거대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어떤 영역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단단한 땅을 딛고 자신이 정한 어딘가로 향하는 것보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액체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궤적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길을 찾기 위해 표류하는, 고정되기 위해 움직이는, 한사코 완결을 내버리지 않는, 그런,
바가텔에 대하여: 최기창의 언-페인팅(Un-painting)과 총천연색 블랙 유머
글 조주리(전시 기획, 미술 평론)
이 세상에 위대함을 경계하며 될 수 있는 한 자기 분야에서 명장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이상한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정은 제각각일 테지만 실제 그런 인물 몇 명쯤은 알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의도된 삶의 속도와 가파르기에 관한 자기판단일지 판가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각예술의 화려함, 비평적 우위에 서기 위한 분투, 제도화된 경쟁 시스템과 같은 미술계의 일면을 떠올린다면 작가의 숙명이란 포기보다는 획득, 순응보다는 격파해야 할 대상을 찾아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한편, 필요 이상으로 각광받거나 위대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도 일정한 노력과 자질이 요구된다.
세속적 성공의 지름길과 우회로, 유턴할 수 없는 각각의 지점에 설 때마다 우아하게 퇴각할 타이밍을 간파하거나, 이제라도 되돌아가고픈 욕망을 억누르고 직진해야 할 당위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속한 세상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가 되기 위해서는 시류를 조망하는 눈과 해야 할 일의 순리를 역(易) 조망하는 교차적 시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는 자기 발전의 역사를 초월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모순적 대응 방식이기도 하지만, 종종 예술 창작의 단면에서 감지되는 자기 주도의 ‘탈 조건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며, 알게 모르게 몸에 익어버린 창작의 조건을 배제하고, 때로 배반하는 일이다.
작가 최기창은 미묘하게 세계와 엇박자를 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기세 좋게 밀어붙이는 것도, 억지로 끌려다니지도 않는 그만의 ‘싱커페이션’은 작업과 작업, 전시와 전시로 이어지는 불연속적 리듬과 강세에서 잘 드러난다. 어딘지 이해받기 어려운 오기와 변덕을 두루 지닌 최기창은 ‘유명한 무명’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들어맞는 문제적 인물이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작가의 모습은 지나치게 위대해 지지 않을 방법을 간구하는 태업가이자, 작업에 대한 자잘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 바지런한 예술 노동자이기도 할 것이다. 뚜렷한 고점도 저점도 찾기 힘든 작가의 이력 그래프는 주기마다 새로운 매체와 방법론으로 옮겨 가는 전략으로 인해 그가 간취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명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하는 일을 작업이라 표명할 수 있고, 나아가 작업을 미루거나 실행하지 않는 선택조차도 창작적 판단이라고 수긍한다면 작가는 늘 작업 중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가텔’은 최기창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꺼내든 키워드다. 클래식 음악 용어인 바가텔 (Bagatelle)은 두세 도막 정도의 소품에 붙이는 불어 명칭으로 사소한 것, 하찮은 것이라는 뜻이다. ‘가벼운 작업’을 지칭하며 자유로운 악상과 우연한 착상이 주요 특징이다. 어쩌면 훗날 대작이 될지도 모를 창대함의 시작일까. 다음 날이면 없었던 것처럼 치우고 싶은 한갓진 유희의 표상일까. 아마도 바가텔은 그 두 점 사이를 지나는 말랑한 이행상태이자, 폐기될지도 모를 연약함에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 <바가텔을 위하여>라는 제목 그대로 작가는 ‘바가텔’ 상태에서 멈춘 작업의 존재를 기념하고, ‘바가텔’적으로 활성화된 작업의 순간을 기뻐하며, 어느 틈에 비대해진 예술의 무게를 사소함의 감각으로 덜어내는 성찰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대형 작업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크기의 캔버스에 잔존하는 것들은 온통 존재의 망설임과 사물의 진동에 물들고, 묻어나고, 섞여 있다. 이제 작업을 시작하는 상태인지, 조금 전까지 쌓아 올렸던 것을 차례로 지워낸 것인지 모호하게 섞이고 스며든 색면뿐이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 다양한 방식의 미술 창작을 시도해 온, 결코 간단하다 할 수 없는 이력을 쌓아온 중견 작가가 소나타나 교향곡은커녕 “바가텔’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퇴행’이라고 규정해야 할까, 혹은 다음 대작으로 옮겨가는 길목에서 쉬었다 가는 무해한 ‘해찰’ 같은 것으로 보는 게 좋을까. 그도 아니라면 역방향의 ‘전진’이라 평해야 할까. 아리송한 예단 대신 작업의 가시적 면면을 살펴보는 일은 극단적 평가를 유보하고, 한 명의 작가가 거쳐온 사고의 팽창과 수축의 과정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전시장으로 옮기기 전, 작품들은 간택되지 않은 예비적 존재다. 작업실에서 마주한 최기창의 ‘드로잉’들은 완성된 지위를 얻기 전이지만, 공간 속에서 한껏 나부끼며 여물지 않은 풍부한 서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출하를 기다리는 상품처럼 냉정한 평가를 기다리는 대신 창작자의 애정을 듬뿍 받은 존재들이었다. 작업실 한 켠에는 미묘한 그라디언트 컬러로 물든 마스킹 테이프 줄기들과 망친 것인지 혹은 작업을 더 해볼 요량으로 치워 둔 것인지 판별 불가능한 상태의 낱장 드로잉들이 있었고, 바닥에는 층층이 포개진 캔버스가 가득했다. 상대적으로 완성태에 가까운 작업들이 이리저리 걸려 있었기에 채색된 작업들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었다. 가운데를 비우고 테두리에 컬러를 집중하여 프레임이 눈에 들어오게 하는 작업, 버려질 마스킹
테이프3를 화면 중앙에 위치시킨 작업, 프레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만든 작업까지 최기창의 작업실은 마치 물감 포말이 번지고 물든 커다란 박스처럼 보였다. 온갖 컬러가 묻은 테이프와 화면, 프레임이 한데 섞여 수직, 수평적 위계를 따지거나 원재료와 부산물,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 또한 무의미해 보였다.
작가의 아를리에가 본래 이러했던가. 스튜디오를 채우는 작업의 에너지를 있는 힘껏 과장 해보자면 보글보글 끓어 넘칠 준비를 마친 부야베스(Bouillabaisse, 프랑스식 해물잡탕) 냄비, 그 속으로 투하할 마르세유 앞바다의 제철 식재료, 다음 주면 매끈한 핏의 수트로
변모할 구겨진 광목 패턴, 물감을 이리저리 섞어 조색을 갓 마친 몽글몽글한 팔레트 상태인 것이다. 또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무질서한 상태로 뒤섞인 그것들은 어떤 이유로든 사라질 지 모를 예비적 폐기물, 작품 간의 시각적 우위나 완성도의 등급을 정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이 결여된 상태일 수 있다.
갤러리 벽면에 아름다운 자태로 걸려있는 위대한 작품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다 보면, 전시 이전에 아틀리에가 있고, 그곳에서 생산된 작품 이전에 작가만의 통찰이 있었고, 그에 앞서 누적된 사소한 경험과 쉽게 밀려나 버린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전시는 미분(微分)적 상태로 돌진하며,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강한 존재에 의해 덮이고, 버려진 것들을 작업의 중심으로 올려놓는 과정이다. 중심과 주변부, 프레임과 그 내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없는 바가텔의 화면들은 공들여 제조한 조화로움, 공인된 미감을 연출하는 일에 기를 쓰지 않는다. 분사된 물감이 남긴 수평, 수직의 운동감과 색채의 미묘한 번짐 속에서 우리는 습관처럼, 기어이 위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말 테다. 오직 색으로만 채워낸 드로잉의 흔적은 역설적으로 미술사에 등재된 색면 회화와 단색화, 붓질의 수행성을 강조하는 일군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미술 시장에서 여전한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는 보편적 미감이기도 하다. 과정이나 의도를 알지 못한다면, 멀리서 오해하기 딱 좋은 ‘적정하고 기분 좋은’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작가가 준비한 총천연색의 블랙 유머인 것일까?
그래피티용 스프레이 물감을 분사하여 일정한 걸음 만들고 몇 번 더 올려 깊이감을 생성해내는 제작 방식은 최기창이 이미 전작에서부터 적용한 기법이다. 아크릴이나 유화와는 달리 스프레이 회화는 사방에 포말을 뿜어내는 운동감으로 인해 거리 미술의 분방한 속성에 가까워 보인다. 공정에 있어 완벽한 성공도 실패도 없으며, 맞닿은 면에 묻어나고 스며드는 침투력 또한 재료 선택의 적확한 근거일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생성해 낸 것들을 ‘페인팅’이 아니라 ‘드로잉’이라고 명명하는 것 또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드로잉은 결과로서의 페인팅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과정이자, 정밀하게 결과를 통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손가락의 압력과 손목 운동의 방향, ‘픽스’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기꺼이 맞닿을 수 있도록 의도한 점,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한 컬러와 면적의 겹침 정도가 작가가 구사할 수 있는 몇가지 창작의 룰일 것이다.
아무것도 받아 적은 일 없던 흰 종이와 밤새 무엇인가 잔뜩 썼다 깨끗하게 지워낸 흰 종이는 같을까? 만일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 것일까. 같지만 하나도 같지 아니하고, 다르지만 어떤 부분만큼은 유사한 조형의 세계에서 우리는 공연히 정답 없는 질문을 쏘아 올려 보곤 한다. 최기창이 어제오늘 내놓은 회화는 그제의 것과는 다르고, 내일의 것과 또 다를 테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감으로 뿌리고 적셨다고 하더라도 ‘한 번은 한 번’인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서 최기창의 작업이 특벌한 선도(鮮度)와 미묘한 차이점을 창출해낸다고 믿는다.
그린 적 없는 그림이지만, 어쩐지 그림처럼 보이는 그의 드로잉들은 아마도 출렁이는 스프레이가, 때마침 창밖에서 들어온 그날의 바람이, 거부할 수 없는 지구의 중력이 그려낸 ‘언-페인팅'(Un-painting)이리라 생각해 본다.
갤러리로 올 작업들의 미래적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나는 다시 한번 바가텔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입안 가득히 머금어 본다. 매일 반복되는 성실함과 몰입의 습성이 어쩌면 독이 되지 않도록 오늘의 할 일을 그만 마감하기. 독창적 생각이 특이함의 정조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한두 번쯤 휴지통 속으로 밀어 넣기. 그리고 다음 날 슬쩍 꺼내어 새로운 가능성을 살며보기. 바가텔을 위한 행동 방식은 이러한 인간적인 자연스러움과 어쩔 수 없는 욕망 안에서 순환, 작동되는 것이리라. 나의 삶이, 누군가의 예술이 그러하듯이.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전당
More, encore, that’s not enough, 2018, ‘Gwangju Biennale’, Asia Culture Centre, Korea
글 김성우,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최기창은 일상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기호, 우리의 인식체계를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조건 등을 탐구해왔다. 작가는 사회 안에 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 관객을 의도적으로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거나, 특별히 고안한 장치를 통해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어떤 상태를 마주하도록 함으로써 감지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효력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은유한다. 그의 작업은 무작위 속 반복과 규칙, 불일치의 연쇄 속에 우연처럼 발생하는 일치의 순간 등 인과관계가 모호하여 쉽게 원인을 드러내지 않고 그 결과에 도달하게 하는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유의 사각에 존재하는 지대를 시각화한다.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2018)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혹은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면 맹세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사성을 바탕으로 아무런 빈틈없이 온전한 하나로 귀결되기보다는, 욕망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그 틈새가 다시 벌어지는, 즉 대립과 적대를 내재하며 반복되는 부재로부터 비롯된 얘기이기도 하다. 최기창은 이러한 믿음과 신념에 존재하는 부재의 틈새를 가시화시키고자 약 1,500곡에 달하는 국가, 찬송가, 군가, 가요를 선정하고 특정 문구를 추출하여 새로운 문장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사랑과 맹신, 부재와 분노와 같은 서로 다른 속성의 공존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공존의 표면에는 결국 개인과 개인, 그리고 집단의 관계를 존속, 유지시키는 사회 구조 속 정의와 맹신에 대한 의문만이 남게 된다. 마치 무조건 적인 믿음과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른 시간대, 다른 문화, 다른 사회적 맥락 안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갈등을 촉발하는 경계 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듯 말이다.
‘노가다’와 ‘노오력’-헬 조선에서 예술 하기
– 작가, 강홍구
최기창의 이번 작업은 ‘노가다’와 ‘노오력’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노가다는 시멘트 모르타르를 만들어 벽과 바닥 천정에 바르고 글씨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를 비롯한 작품의 제작 방식을 뜻한다. 노오력은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개념적인 지향점이자 어쩌면 미술이라는 이름의 예술 활동이 보여주는 허망함과 막막함을 압축해 보여주는데 딱 맞는 요즘의 유행어이다. 용산구 서계동이라는 알듯 하나 낯선 동네 작은 전시장에서 벌어지는 그의 전시, 혹은 작업은 헬 조선의 젊은- 사실은 막 중년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미술가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사건을 우리는 개념미술, 프로세스 아트의 한 흐름 따위로 부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작업의 결과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구체성과 전체성이라는 오래된 자로 잰다면 그가 하는 작업의 구체성은 신체에서 오고, 그 신체성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몸을 통해 남김없이 폭로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은 주체와 이성에 관해 끊임없이 담론을 만들지만 사실은 늘 신체성의 한계에 갇혀있다. 그리고 미술 작품이란 아무리 개념적이라고 해도 신체를 매개하지 않고는 제작될 수 없다. 최기창은 그의 작업을 신체를 통한 노오력과 노가다로 밀어 붙인다.
최기창이 벽과 천정과 바닥에 모르타르를 바르고 그리고 써가는 과정을 포함한 모든 작업들은 그가 의도하는 전체성이 어디에 이르는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은 사회 전체인 것 같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관한 듯도 하며, 국가와 인간들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행복에 관한 것이며, 밝은 미래가 보이는 어떤 과정인 것처럼 얘기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위장일 것이다.
전시장 벽에 뇌와 심장이 그려져 있다. 뇌 그림에는 ‘나, 너, 우리’라는 글씨가 반복해서 쓰여 있다. 그 글씨들은 우리가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사고 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해서 너, 우리로 나아가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 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나, 너, 우리라는 세 개의 대명사는 그 함의가 단순하지 않다.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낱말들이 초등학교 일학년 국어 교과서 첫머리에 실린 적이 있었다. 1973년 교과 과정 개편의 결과였는데 아시다시피 이때는 유신시절, 박정희와 김재규와 차지철이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살아있던 시절이다. 그 이전의 국민학교 일학년 국어 교과서의 첫머리는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영희야 놀자, 바둑아 놀자’ 따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난이 이런 저런 글들에 등장했었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예를 들자면 미국은 ’Go, Stop’등의 공공적 내용이, 제국주의 시절 일본은 ‘깃발, 깃발, 우리의 깃발 일장기’ 등의 애국적인 내용이 초등학교 일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데 우리나라는 개새끼 따위와 노는 내용이 실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유신의 폭압 아래 애국심 따위를 제고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내용이 국민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첫머리에 실렸었다. 아마도 최기창은 그 교과서로 국민학교 일학년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 아니 몸에 육화되고 각인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데올로기는 동시에 노력하면 아니, ‘하면 된다’라는 구호에 집약되어 있었다. 구호와 말들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찍혀 무의식을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시장 바닥의 뉴스들처럼 새로운 것들로 덮여 사라진다.
최기창이 그린 드로잉들, 뇌, 심장, 미소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생존방식의 기초이다. 뇌는 이데올로기와 의식을, 심장은 육체와 신체성을, 미소는 사회적 생존방식 혹은 긍정의 가면이자 알리바이 이거나 자기 위안의 수단이다. 그가 바닥에 쓴 뉴스들은 자신이 생산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외부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대부분 화제를 불러일으키거나 우리 사회의 욕망의 갈등과 파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것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행위이고 바닥에 쓰였다 사라진다. 뉴스는 끝없이 사라지고 생산되는 것이다.
바닥을 마주 보는 천정에는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했다는 말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가 쓰여 있다. 그 말은 브랑쿠시 시절의 예술가에 대한 관념 혹은 이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창조성과 예술가의 중요성을 믿었던 시절을 지배하던 왕과 신이라는 개념은 예술계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단지 노예만 남은 시대인 듯 보인다. 그 노예들이 하는 일이 바로 ‘노오력’이다. 노오력은 노가다고 노가다는 노예들의 일이다. 최기창이 무엇을 의도했건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러나 최기창이 만들어 낸 노동요 <하>(2015)와 <Muse>(2015), <잔불>(2015), <Interviewee>(2015) 등을 보면 이 비관론이 꼭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요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무의미하고 거의 신음에 가깝다. 조용한 비명이자 침묵이고 노래이다. 이 모순적 표현이 가능한 까닭은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노동이란 게 내용이 없는 단순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화음을 쌓아도 무의미하고 절망적이다. <Muse>는 어떤가? 알 수 없는 가상의 신호들은 <Interviewee>에서도 되풀이 된다. 그 되풀이는 노동요처럼 공허하다.
마지막으로 <잔불>이 남는다. 잔불은 타다 남은 불이다. 미술학원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잔불은 이제 다 타버린 미술의 역사가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 이 잔불들을 보고 믿고 쬐며 아이들은 다시 예술, 미술의 부활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최기창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을까?
그는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말들이 하나의 큰 교훈이며 꼭 그렇지는 않지만 밝은 미래를 향하는 어떤 계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 과정, 교류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이 존재하고, 교환되고, 그럼으로써 무언가 얻을 수 있다고 애써 주장한다. 물론 내게는 그것이 반어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기교이다. 김수영 식으로 말하면 ‘절망이 기교를 낳은’ 것이다.
최기창은 그의 작업들을 아프리카 티브이를 통해 중계한다. 사실 나는 그것까지 챙겨 볼 여력은 없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1인 미디어에 대한 흥미는 많지만 별로 땡기지가 않는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쩌면 1인 미디어야 말로 미술이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멘트 한 포대는 40kg이다. 최기창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무게를 다시 실감했고, 모르타르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벽과 천정에 붙지 않는다는 사실은 재확인 했다고 한다. 줄기찬 노오력을 통해 그는 작업들을 진행시키고 그러는 동안 시멘트는 더 말을 잘 들을 테고 그는 요령을 터득할 것이다. ‘요오령’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요령은 헬 조선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만약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라며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최기창은 금수저를 타고 났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오력과 노가다로 미술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방식은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미술가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 간에.
서로 마주보고 눈이 뻘개 질 정도로 눈싸움을 하고 있는 최기창의 2채널 영상 작품<Eye contact 아이콘택트>에서 등장인물들은 누구와 왜 대결하는지 모른다. <팔자시계 Fortune Timer>에서 양쪽을 향해 기계적으로 넘어가는 108개의 단어는 무작위적 결합을 계속한다, 반복 재생되는 단채널 비디오작품 <19×19>에서는 띄어쓰기가 안 되어 읽기 힘든 문장을 정사각형에 배치한다. 그의 작품에는 주사위놀이처럼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운명적 결정이라는 공통주제가 있다. 1892년 미국의 철학자 피어스가 ‘우연이 우주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요인이고, 자연관찰이 정확할수록 그 관찰은 법칙으로부터 불규칙함을 더욱 보여줄 것’이라고 한 과학철학이 정확할수록 그 관찰은 법칙으로부터 불규칙함을 더욱 보여줄 것’이라고 한 과학철학의 원리는 현대예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최기창은 우연이나 운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결정되는 장과 규칙은 엄격하다. 그가 연출하는 우연놀이는 닫힌 총괄적 세계 속에 가두어진 세계에 숨통을 틔워 주는지, 아니면 마구잡이 식으로 다가오는 사건들에 그저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인지는 불확실하다. 체계화의 밀도와 강도가 높아질수록 우연의 힘은 더욱 커진다. 코드를 통한 체계화가 좀 더 촘촘하게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운은 일종의 탈주로로 간주될 법도 하다.
– 이선영 미술비평, 발췌
최기창의 계속되는 역설극
–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인식은 주관과 객관의 상호작용이다. 선험의 과정에서 얻어진 여러 조각들은 면밀하게 조합되어 어떤 주관적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모든 객관은 철저하게 그 구조의 틀 위에서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인식의 주체가 있는 한, 객관은 끊임없이 주관의 영역으로 수렴된다. 이것이 인식의 주체를 분리하고 인식의 과정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최기창의 작품들은 스스로 어떤 인식의 대상이기보다 추상적인 대상을 인식하는 작가 자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통로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인식의 객관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최기창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건 2001년 사간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슬픈 패러독스>에서였다. 예상과는 다른 미술대학교육의 경직성에 답답함을 느꼈던 최기창은 졸업 직후 어수선한 심정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에게 현대 미술은 다소 무겁고 버거운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그의 첫 개인전에서 등장했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제도의 무게를 상당히 의식했음을 미루어 볼 수 있다. 그 전시로 인해 어느 월간지에서 주목할 만한 신예 작가를 발굴하는 ‘New Face’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그의 첫 개인전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당시의 작품에 불만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작가로서 갈 길이 멀다는 것과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정은 그가 한동안 영국에 머무르게 한 동인이 되었다.
2003년부터 3년여의 시간 동안 그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 새로운 표현의 방법론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 보겠다는 그의 결심은 의외의 역설적 상황을 만나 와해되기에 이른다. 일정시간이 지난 후 그가 맞닥뜨린 것은 바로 공고한 단절의 벽이었다. 소통의 난관은 그로 하여금 후기 식민주의나 제3세계 이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도 했다. 기실 영국은 서구 백인들의 보수적 주류문화가 아직도 강력하게 존재하는 사회이다. 어쩌면 그가 가진 불만은 특수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문화권이 중심이 된 고급 예술의 경직된 속성에 대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최기창은 그들이 쳐놓은 그 위계적 제도 장벽을 뚫고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한계 상황에서 절망을 체험했을 때, 그는 유학을 통해서 뭔가를 얻어 내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포기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남기겠다는 미련을 제거해 버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에게는 새로운 창작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위압적으로 다가온 일체의 환경에 대한 불만스러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이다. ‘Intervention 연작’이 바로 그렇게 출현한 작품들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나 제도에 딴죽을 걸고, 신경을 거슬리게 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당시 자신의 작업에 몇 가지의 원칙을 적용했다. 저렴한 재료와 조악한 외양, 보존되기 어려운 형식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당시 그의 작업들은 독립된 오브제로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행위가 결부되지 않으면 작품으로 성립할 수 없는 해프닝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전시장 구석에서 조금씩 물이 넘쳐 밖으로 흘러나오는 양동이 같은 것이 그것인데, 작품인 줄 모르고 전시장 환경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수시로 치워지는 그 물 양동이 들은 최기창이 작품임을 강하게 주장하며 다시 전시장 원위치에 갖다 놓는 행위가 개입할 때 비로소 작품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가벼운 형식에 자신의 행위와 현장의 시간성을 담아내는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