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최기창_2025_달들_전시포스터

<월야매화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월야매화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Wolyameahwado (Plum Blossom under the Moonlit) Ash and oil on canvas, 46×38㎝, 2025

<월야도: 내일> 황마 위에 재, 유채, 45×45㎝, 2025

<매화도1, 2> 캔버스 위에 재. 유채, 각각 46×38㎝, 2025

<매화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매화도2>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초충도: 내일> 캔버스 위에 유채, 재 46×38㎝, 2025

<모란도: 내일> 황마 위에 재, 경면주사, 유채 ∅40㎝, 2025

<모란도> 캔버스 위에 유채, 재, 경면주사, Ø40㎝, 2024

<화접도: 내일> 황마 위에 재, 경면주사, 유채 ∅40㎝, 2025

<초충도> 황마 위에 재, 유채, 45×45㎝, 2025
Chochungdo (glass and insect), Ash and oil on canvas, 45×45㎝, 2025 

<화조도: 내일> 황마 위에 재, 유채 ∅40㎝, 2025

<화접도: 내일> 황마 위에 재, 유채 ∅40㎝, 2025

<호피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Hopido (Tiger painting) Ash and oil on canvas, 46×38㎝, 2025

<호피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Hopido (Tiger painting) Ash and oil on canvas, 46×38㎝, 2025

<호피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Hopido (Tiger painting) Ash and oil on canvas, 46×38㎝, 2025

<호피도> 황마 위에 재,, 유채 ∅40㎝, 2025

<코접도> 황마 위에 재, 유채, ∅40㎝, 2025
Cojupdo (Coke and Butterfly) Ash and oil on jute, ∅40㎝, 2025 

<호피도> 캔버스 위에 재, 유채 46×38㎝, 2025
Hopido (Tiger painting) Ash and oil on canvas, 46×38㎝, 2025

2024

《만사형통》(더 스퀘어, 2024)에서 작가는 조선시대 민화를 모티브로 ‘그림의 용도’라는 화두를 던진다. 갑오경장 이후 폐관된 도화서의 화공들은 생계를 위해 민초들을 위한 그림을 그려 팔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고 해야 할까? 조선시대의 민화는 여러 관점에서 대단히 현대적이고 세련되었으면 탁월한 용도를 가진 그림들이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민화를 대상으로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렸다. 민간신앙의 꿈에 답하듯 수많은 상징을 통한 화조도, 초충도, 십장생도 등을 현대미술로 끌어들인 이 ‘민화를 그린 그림’들이 민화가 그랬듯 민초들의 기복 소망을 채워 줄 수 있을까?

대표작 <호피도> (2024)는 제작 과정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호피의 묘사를 벗어나려고 애 썼다. 다만 수많은 붓질을 남기며 분방한 우연성을 받아 들이려고 했고 최대한 본능적인 제스쳐를 유지하면서도 호피(도)로서 빈틈이 없는 시각적 결과를 내려고 했다. 호랑이 가죽 그림이 아니라 ‘민화를 그린 그림’ 이기 때문에 ‘민화적인 태도’, 즉 자유롭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어진화사를 그리던 도화서 화공들이 낙관과 서명이 없는 그림을 그렸을 때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했다. 호피도가 갖는 특이점은 한국민화에만 나타나는 유일한 도상이라는 점과, 벽사(辟邪)의 용도를 갖는 다는 점이다. 뿔 달린 호랑이 형태의 상상의 동물 벽사는 액운과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로 신부의 가마 속을 휘감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용도를 평면회화에 담을 수 있을까? 마른 유화물감 모아 태우고 그 재를 호피의 무늬를 그리는 안료로 물감에 섞어 그렸다. 마치 부적 쓸 때 사용하는 경면주사처럼 어떤 효험을 불어 넣는 기능으로 말이다. 호피도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액운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기원이 전달될까? 《만사형통》은 그런 기원의 과정을 믿고, 행하면서 현대회화에 필요한 어떤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벽사는 ‘사예(邪穢)를 물리친다’, 즉 ‘마귀를 쫓는다’는 뜻으로 ‘벽사수(獸)’라고도 한다. 그 모양은 범과 비슷하나 뿔을 가진 공상의 동물에서 유래한다.

<홍매화도> 2024, 종이 위에 유채, 재, 경면주사, 금분 208×150㎝



<호피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521×162.5㎝

‘만사형통’ 전시 전경

<호피도: #01 / #02>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130×162.5㎝

<호피도: #03 / #04>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130×162.5㎝

<포도도: #01, #02> 2024 캔버스 위에 재, 유채, 81×117㎝

<초안도: #01> 2024 캔버스 위에 재, 유채, 73×91㎝



<파초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90×145㎝



<초충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38×45.5㎝

<불로초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25×25㎝

<초충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36×46㎝ / <초충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36×46㎝



<화조도> 2024, 캔버스 위에 유채, 재 38×45.5㎝

2023

2022

Für Bagatelle: #02, 46x58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Für Bagatelle: #03, 46x58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Für Bagatelle: #06, 37×52.5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Für Bagatelle: #07, 37×52.5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Cyclical Night: #03, 90×90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Cyclical Night: #04, 90×90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Cyclical Night: #05, 81x122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My Bagatelles: #09, 28×34.5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My Bagatelles: #08, 32×41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Für Bagatelle: #01, 32×41cm, Spray paint on panel, masking tape, resin, 2022
My Bagatelles: #06, 28×34.5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My Bagatelles: #07, 28×34.5cm, Spray paint on panel, resin, 2022


Zenith drawing: #02, 52×42cm, Acrylic paint on paper, frame, 2022
Zenith drawing: #01, 52×42cm, Acrylic paint on paper, frame, 2022


Zenith drawing: #07, 52x42cm, Acrylic paint on paper, frame, 2022
Zenith drawing: #03, 52×42cm, Acrylic paint on paper, frame, 2022
Zenith drawing: #04, 52×42cm, Acrylic paint on paper, frame, 2022


2021

<코뿔소> 2021, 철판에 부식, 레진, 210×270㎝


<코뿔소> 2021, 철판에 부식, 레진, 210×270㎝


흠결 없는 마음, 2021, 1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무지개 장면: #6>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알루미늄, 레진, 92×102㎝


<무지개 장면: #5>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알루미늄, 레진, 80×84㎝


흠결 없는 마음, 2021, 1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무지개 장면: #7>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알루미늄, 레진, 120×270㎝


<무지개 장면: #1~#4> 2021, 철판 위에 부식,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116×81㎝


흠결 없는 마음, 2021, 2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순환하는 밤: #1, #2> 2021, 철판 위에 부식,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116×81㎝


흠결 없는 마음, 2021, 3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큰 바위> 2021, 철판 위에 부식, 레진, 270×140㎝


<Lucky Drawing: 그 쓸쓸함,>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부식, 레진, 70×50㎝
<Lucky Drawing: 밤이면 밤마다,>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부식, 레진, 70×50㎝
<Lucky Drawing: 타오르고 있어요,>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부식, 레진, 70×50㎝


<Lucky Drawing: 아,>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부식, 레진, 70×50㎝


<Lucky Drawing: 장미빛,> 2021,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부식, 레진, 70×50㎝


5.18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 할 수 있는 것 사이’ 전시 전경, 2021, (구)광주국군병원


5.18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 할 수 있는 것 사이’ 전시 전경, 2021, (구)광주국군병원


<무지개 장면: #4>, 2021, 철판에 부식,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116×81㎝


2020

한 번의 키스, 2020, 1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피에타> 2020, 철판 위에 부식, 레진 210×180㎝


<아마 우리는 다시 마주치더라도 서로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2020, 철판 위에 부식, 레진, 120×270㎝


<참,> 2020, 철판 위에 부식, 스프레이 페인트, 150×120㎝


<전쟁 같은,> 2020, 철판 위에 부식,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120×90㎝


한 번의 키스, 2020, 2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한 번의 키스, 2020, 2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두 봉우리> 2020, 철판 위에 부식, 레진, 120×180㎝


한 번의 키스, 2020, 3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신의 창조> 2020, 철판 위에 부식, 레진, 70×180㎝


한 번의 키스, 2020, 3층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드로우 드로잉 시리즈>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각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Better than Future> 2020, 철판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레진, 60×5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20, 기둥에 음각, 장지 위에 프로타쥬, 340×56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20, 기둥에 음각, 장지 위에 프로타쥬, 340×56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20, 기둥에 음각, 장지 위에 프로타쥬, 340×56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20, 기둥에 음각, 장지 위에 프로타쥬, 340×56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20, 기둥에 음각, 장지 위에 프로타쥬, 340×560㎝


설치 전경, 작업 다큐멘터리 영상


2018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기둥에 음각, 800×400×300㎝


<More, encore, that’s not enough>(2018)은, 개인이나 집단, 또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와 겹쳐지는 사랑의 속성을 포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상투적인 사랑의 고백처럼,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애창되는 유행가나 군가, 국가나 찬송가 등에는 애착의 대상에 대한 믿음이나 정의definition, 애도나 연민 혹은 적대성을 나타내는 가사들로 가득하다. 약 1,500곡에서 추출한 이 사랑의 인용구들을 약 8m 높이의 기둥 벽에 깎고, 새기고, 벌어진 틈을 메우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이번 작업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틈이 없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끝없는 수행을 드러낸다.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기둥에 음각, 800×400×30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기둥에 음각, 800×400×30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기둥에 음각, 800×400×300㎝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장, 955.0×343.5×0.5㎝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장, 955.0×343.5×0.5㎝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장, 955.0×343.5×0.5㎝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2018,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장, 955.0×343.5×0.5㎝


2016

<잘 지내길 바라> 2016, 부산비엔날레, F1964 (구)고려제강, 부산
Long may you run, 2016, Busan Biennale, Korea

남겨진 고려제강 수영공장의 옛 벽면에 약 300여 개의 구멍을 뚫는 것으로 시작하는 <Long may you run>의 작업은 매 구멍마다 사연이 있는 물건들로 채워가며 진행된다. ‘과거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물건이거나 그 일부’, 또는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지만 이제는 그 소장 의 이유가 퇴색한 어떤 것들’로 메워지는 구멍들은 파란 페인트로 칠 해진 수평의 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상처의 배의 형상을 닮아 있기 도 하다. 또한, 뚫어진 구멍들 은 옛 공간과 신생 공간을 잇는, 잊혀진 과거와 달라진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기대를 사이에 두고 교류 하는 통로 역할을 자처한다.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Long may you run>, 16m 벽에 304개의 구멍, 잃어버린 후 되찾은 물건들, 소장 이유가 사라진(잊혀진) 물건들, 2016


부산비엔날레 2016, <Long may you run> 설치 전경, F1964 (구)고려제강, 부산


<굴러온 돌> 2016, ‘APMAP: Make Link’, 용산가족공원
A stone Rolled, 2016, ‘APMAP: Make Link’, Yong San Family Park

이번 APMAP를 통해 제안하는 작업 <굴러온 돌>은 용산가족공원의 장소에 대한 역사를 훑어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용산은 한강과 남산을 잇는 곳으로 형세가 용을 닮아 이름 지어진 수도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하지만 작명의 포부와는 달리 역사적으로는 썩 기운차지 못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군의 병참기지, 임오군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였으며 광복 전까지는 또다시 일본군 거점으로, 한국전쟁 이후로는 지금까지 쭉 미군의 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그야말로 이방인들의 대표적인 소굴이었다. 1992년 미군사령부의 골프장 부지를 공원화하기 시작한 것은 늦게나마 반길만한 뉴스였다. 오랜 시간 동안 주인 노릇을 하지 못했던 땅이었지만 이 곳은 이제 서울시로 환원되어 가며 가족공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민들은 산책로로, 캠핑 장소로뿐만 아니라 결혼식이나 축제의 장으로 용산의 녹지를 누리게 되고 있다.

어느 날 용산가족공원을 산책한다면 마주치게 되는 이 <굴러온 돌>은 크기나 모양, 재질이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게다 어찌 보면 흔들바위를 연상하게 생긴 모양이지만 막아선 본새는 어쩐지 권위적이고 이질감이 들어 찜찜하다. 약 한달 간 그렇게 산책로를 막아선 채로 머물던 이 큰 덩어리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불면 다소 건들거리며 부식되고 변색되며 버텨보겠지만 결국 사라진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아주 잠시 이방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되찾은 용산의 일부분처럼 이 바위 모양의 정체 모를 덩어리도 곧 그들처럼 별 수 없이 사라질 것이다.


<굴러온 돌> 2016, 철, 동분, 시멘트, 400×350×350㎝


<굴러온 돌> 2016, 철, 동분, 시멘트, 400×350×350㎝


<굴러온 돌> 2016, 철, 동분, 시멘트, 400×350×350㎝


<굴러온 돌> 2016, 철, 동분, 시멘트, 400×350×350㎝


2015




<행복으로 가는 길> 2015, 시멘트 위에 당일 뉴스 새기기


<행복으로 가는 길> 2015, 시멘트 위에 당일 뉴스 새기기


<행복으로 가는 길> 2015, 시멘트 위에 당일 뉴스 새기기


<Brainstorming> 2015, 시멘트 위에 음각 드로잉


<세 개의 심장> 2015, 시멘트 위에 음각 드로잉


<밝은 얼굴> 2015, 시멘트 위에 음각 드로잉


<노동요: 하> 2015


<노동요: 하> 2015, 작곡 악보


<Muse> 2015, 앵무새, 새장, 방울


<Interviewee> 2015, 모션센서, 스포트라이트, 스피커, mp3 플레이어, 의자


<잔불> 2015, 스티로폼, 석고, 아크릴 채색


2014

<Live LIFE>, 2014, 팀 황학동: 황학동 길거리 연주 프로젝트

<Live LIFE>는 케이크갤러리가 기획하여 2014년 5월부터 진행해온 ‘팀 황학동’ 프로젝트 중 하나로써, 황학동 벼룩시장 내 솔로몬 빌딩(중앙상가) 건물 일대에서 주말마다 진행해온 길거리 연주 프로그램이다. ‘최기창+윤민화’는 ‘팀 황학동’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벼룩시장의 성격과 분위기를 알게 되었다. 이 동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주로 낡은 카세트나 영상 혹은 음향 장비들을 수리하고 테스트를 위해 틀어둔 나름의 용도를 가진 소리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뒤섞여 소음에 가까운 이 소리들은 골목까지 뻗치고 나온 오래된 물건들이 주는 시각적인 정서와 뒤엉켜 황학동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차적으로) 클래식 악기 연주회를 라이브 무대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보고자 했다.

오래된 물건을 거래하거나 구경을 위해 나온 사람들로 번잡한 황학동의 좁은 골목 풍경 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는 클래식 악기의 선율은 묵직하고도 생경한 소리로 오가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비록 스치듯 연주소리와 마주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황학동 거리의 풍경과 더불어 오래도록 추억하게 될 기억으로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던 오보에 연주를 시작으로,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의 순서로 연주가 진행되었고, 금관 악기의 연주로 올해의 공연 프로그램은 마치게 된다. 연주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공연이기에 주1회라는 감당할만한 일정으로 시작하였으나 솔직이 횟수가 거듭되며 주 1회도 벅찬 일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주변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더욱 다양한 악기연주자와 장르로도 공연이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연주자의 자유로운 참여와 선곡으로 진행하였지만,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동반자>와 영국의 록밴드 Muse의 <Starlight>은 일종의 ‘팀 황학동’의 주제곡처럼 매주 동일하게 연주되었다. <Live LIFE>로부터 시작된 황학동의 거리 공연 문화가 지역의 생기를 불어넣는 촉진제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처럼 음률에 따라 흥얼거리고 ‘당신은 나의 동반자’를 무심코 따라 부른 그 순간들은 모두가 서로에게 별처럼 빛나는 ‘팀 황학동’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섭외와 진행에 적극적으로 신경 써주신 ‘팀 황학동’ 팀원들과 매 번 서슴없이 손을 빌려주신 주변의 상인 분들, 그리고 박수와 환호로 응원해주신 모든 행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팀 황학동: 최기창+윤민화

<Live LIFE>, 2014, 팀 황학동: 황학동 길거리 연주


<Live LIFE>, 2014, 팀 황학동: 황학동 길거리 연주


<Live LIFE: 동반자>, 2014, 싱글 채널 비디오, 4’ 31”


<Live LIFE: Starlight>, 2014, 싱글 채널 비디오, 3’ 36”


<Live LIFE>, 2014, 팀 황학동: 길거리 연주 기록영상, 전시 전경


<Maison de Maman> 2014, KT&G 상상마당, 춘천

프랑스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엄마(Maman)’이라는 작품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거미의 커다란 배 안에 모성을 가득 담고 있다고 믿었으며 새끼를 본능적으로 지키는 거미의 모습에서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 작품의 제목, ‘메종 드 마망(Maison de  maman)’, 즉 ‘엄마의 집’은 그런 엄마들의 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동시에 ‘엄마의 집=예술의 모태=상상력’ 이라는 등식을 부여하며 춘천에 새롭게 개관한 ‘KT&G 상상마당’이 모든 이들의 상상력이 발화되는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엄마의 집> 2014, 철, 분채도장, 468.5×286.5㎝


2013

<+씨 프로젝트> 2013, ‘4회 안양공공미술 프로젝트’, 안양

최기창은 APAP의 여러 장소와 프로그램, 그리고 잠재적 대중을 이어주는 매개로 기능했던 <자전거 프로젝트>(2010)를 재활용하여 APAP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M+C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접근이 어려워 소외되었던 장소들을 요긴하게 이어주던 자전거는 일상에 파묻혀 잊혀지고 사라진, 그래서 평가조차 되지 않았던 APAP 작품들을 재발견하고 연결해주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느리고 불편한 자전거를 타거나 끌고 가며 마주치는 작품들을 배경 삼아 작품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전문가의 평가, 일반인들의 감상을 풀어낸 랩이 반복적인 비트와 리듬을 타고 흐르며 우리의 귓가를 맴돈다. 불쑥 눈앞에 나타난 작품에 대한 객관적/주관적 정보와 전문적/비전문적 판단이 청각적으로 교차하고 맞물리는 가치 혼란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M+C project, 2013, ‘4TH Anyang Public Art Project’, Korea

Kichang Choi proposes ‘M+C project’ and thus traces APAP(Anyang Public Art Project), reusing ‘Slow trans Anyang’ (by Giacomo Castagnola, 2010) which functioned as a medium of linking APAP’s various places, programs and potential public. Connecting vitally several alienated places which were difficult of access, the bicycle performs effectively the function of rediscovering and relating APAP works, buried in everyday life, forgotten and disappeared without even being evaluated. The rap music, running through repetitive beats and rhythms, lingers in our ears and delivers objective information on the works, assessments of the specialists, and impressions of the public with, in the background, works we come across, riding or dragging the slow and uncomfortable bicycle. What are we supposed to experience in that chaos of values where works pop up abruptly and objective/subjective information, professional/nonprofessional judgments come intersecting and mingling in an auditory way?

<M+C project: Take #7> 2013, 싱글채널 비디오, 1’ 55”
: 예페 하인, ‘거울 미로’, 2005 / 자꼬모 카스타눌라, ‘자전거 프로젝트’, 2010 / 옥정호, ‘안양 무지개’


<M+C project: Take #9> 2013, 싱글채널 비디오, 1’ 51”
: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 ‘1평 타워’, 2005 / 자꼬모 카스타눌라, ‘자전거 프로젝트’, 2010 / 옥정호, ‘안양 무지개’


<M+C project: Take #11> 2013, 싱글채널 비디오, 2’ 03”
: 다니엘 뷔렝, ‘오색 찬란한 하늘 아래 산책길’, 2007 / 자꼬모 카스타눌라, ‘자전거 프로젝트’, 2010 / 조은지, ‘유연한 풍경’


<M+C project: Take #14> 2013, 싱글 채널 비디오, 2’ 13”
: 김용익, ‘만고강산 유람할 제’, 2005 / 자꼬모 카스타눌라, ‘자전거 프로젝트’, 2010 / 옥정호, ‘안양 무지개’


<Rising Falling> 2013, ‘APMAP: Reverscape’, 아모레퍼시픽 뷰티 캠퍼스, 오산

매일 뜨거나 지는 별들의 세차운동으로 보이는 <Rising Falling>은 수면에 비친 절반의 음영으로 비로소 온전한 형상이 된다.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또한 이처럼 물질과 비물질, 보이는 것과 감춰진 것의 상관관계 아래 놓이게 되며 ‘모든 것은 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지는 것들 혹은 무너지는 것들은 반드시 다시 떠 오른다’는 재귀순환적 의미를 부여 받는다.

부제인 ‘Cygnus 백조자리’는 전시기간인 (8월~10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천정에 뜨는 대표적인 별자리이다. 수로 위에 나타난 별들의 움직임이 한 낮에 감춰진 천구의 백조를 반영한다.

<Rising Falling> 2013, Powder coated stainless steel, Dimension variable


<Rising Falling> 2013, Powder coated stainless steel, Dimension variable


<Rising Falling> 2013, Powder coated stainless steel, Dimension variable


<Rising Falling> 2013, Powder coated stainless steel, Dimension variable


<Rising Falling> 2013, Powder coated stainless steel, Dimension variable


<슬라이딩 룰스> 2013, ‘다시쓰기’, 두산 갤러리, 서울, 뉴욕

빛의 삼원색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슬라이드를 하나의 스크린에 동시 투사한다. 서로 다른 속도로 작동되는 프로젝터의 파편적인 문구가 동시에 스크린에 머물면 일시적으로 ‘네-아니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세 개의 슬라이드가 스크린에 겹쳐지는 순간 백색으로 중화된 화면 위의 이 질문들은 끊임없는 어긋남 속에서 순간적으로 경험하는 일종의 충만함이다. 하지만 이 순간마저도 일치를 향한 강박의 어긋난 투사가 아닌지 스치듯 질문 받고 있다.

Sliding Rules, 2013, ‘Translate into Mother Tongue’, DOOSAN gallery, Seoul, New York

Three slides, composed of the three primary colors of the light, are projected simultaneously on a screen. When the fragmentary phrases, cast through projectors operating at different speed, remain at the same time on the screen, we are faced temporarily with a ‘yes-no’ question. These questions, which appear on the screen neutralized in white the instant three slides overlap, represent a sort of fullness we feel ephemerally in the perpetual dislocations. Nonetheless, even at this very moment, we are asked if it is not a dislocated projection of our obsession with accordance.

<Sliding Rules> 2013, 슬라이드 프로젝터, 리어 스크린, 가변설치


<Sliding Rules> 2013, 슬라이드 프로젝터, 리어 스크린, 가변설치


<Sliding Rules> 2013, 슬라이드 프로젝터, 리어 스크린, 가변설치


<Eye Contact>: On-going Project, 2012~

<Eye Contact> 2013, 서울 스퀘어 전시 전경, 디지털 큐브 상영 전경


2012

<아이 콘택트> 2012, ‘아트스펙트럼’, 삼성 미술관 리움

최기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엮여 있는 사건들을 작품으로 재현한다.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상대방과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들에서부터 신문 운세란의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조합은 이유 없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비추어 준다. 작가는 불가해한 세상을 조명하여 우연의 연속인 우리의 존재 자체를 더 분명히 보여 준다. 천체 속에서 움직이는 별의 모습과 행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 날짜 수와 연결되는 텍스트의 행렬들은 나름의 우주적인 질서를 따르지만 우리는 결코 그 의미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 생의 마지막까지 존재의 의미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반추의 결과들이다.

Eye Contact, 2012, ‘ART SPECTRUM’, Samsung museum LEEUM, Korea

In his work, Kichang Choi represents incidents that are linked via invisible connections. From the gazes of people locked in a staring contest with randomly selected foes to a combination of words taken from a newspaper horoscope, Choi’s works highlight a world composed of irrational coincidences. By calling attention to this incomprehensible world, the artist heightens an awareness of our existence determined by chance. Things such as stars and their orbits in the galaxy, and the number of days required by the earth’s rotation around the sun, and a sequence of texts linked to one another all follow their own cosmic orders, but we can never completely understand the meanings behind. This is a result of human reflection, which can never fully understand the meaning of existence until our lives expire.

<Eye Contact> 2012, 2채널 비디오-인터렉티브 설치, 무작위, 무한반복 재생


<Eye Contact>: On-going Project, 2012~

 ‘쌍방향 2채널 랜덤 인터렉티브 영상설치’의 형태로 구현될 프로젝트 <Eye Contact>는 서로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행위에 대한 또 다른 의미부여로부터 출발한다. 이 작업은 동양—특히 ‘한국’이라고 사전에 명기되어 있음—적 정서에서는 예의 없는, 혹은 도발적인 행동으로 간주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진실함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상호소통의 행위로 인식되어온 ‘시선 맞추기’를 통해 문화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드러나는 ‘해석의 유동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우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상자는 카메라와의 ‘눈싸움’을 하도록 요구 받게 된다. 최대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눈의 깜빡임을 참아내는 무모한 행위를 통해 얻어진 영상 데이터는 각각 하나의 개별 유닛으로 간주되며, 이것은 다시 참여자의 신분—성별, 나이, 학력, 직업, 거주지역, 경제력, 국적 등—에 따라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된 데이터는 프로젝트를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셈이다. 약 2m 간격을 갖는 마주보는 두 개의 대형 스크린(최소 3m x 4m 이상)에 최종적으로 제시되는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눈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여지게 된다.  개발된 프로그램 ‘아이 콘택트’에 의해 어느 한 쪽의 참여자가 눈을 감게 되는 순간—눈싸움의 승부가 끝나는—다음 참여자로 무작위 적으로 교체되고, 다음 참여자 또한 동일한 상황에 놓여 무한반복 진행된다. 하지만 촬영 참여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이유로 대치하게 되는지 알 수 없으며, 이런 상황은 진정 눈을 감을 때—사망 시—까지 벌어지는 인간 삶의 불가피성, 혹은 쟁투적 모습과 닮아 있다. 관람객들은 마주하는 참여자들이 각자 어떤 유형학적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대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으나, 수많은 카테고리의 집합체인 개개의 참여자가 등장하는 실제적 인과의 고리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진다. 이것 역시 ‘결과는 있으나 원인은 알 수 없는’ 삶의 한 단면을 은유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Eye Contact>프로젝트를 구동시키는 프로그램은,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하며 보이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ye Contact>은 장치와 관객 사이의 물리적 행위를 매개로 하는 단순한 인터렉티비티의 구현이 아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진행되어온, 그리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관계의 상호성에 대한 보다 거대한 은유, 인간 자신을 되돌아보는 은유를 지향한다.

<Eye Contact> 2012, 2채널 비디오-인터렉티브 설치, 무작위, 무한반복 재생


<Eye Contact> 2012, 2채널 비디오-인터렉티브 설치, 무작위, 무한반복 재생


<19x19> 2012, ‘아트스펙트럼’, 삼성 미술관 리움

순환적 상황만이 반복되는 회색의 지대를 묘사한 글이다. ‘한 해’, 즉,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정사각형의 19오와 19열 위에 한 글자씩 배치시킨 것으로 글을 읽을 때 생기는 리듬이 최대한 배제되도록 띄어쓰기가 없다. 영상이 움직이는 속도 역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적당한 거리에서 보기에 혹은 읽기에 불편한 호흡을 유도한다.

<19×19> 2012, 싱글채널 비디오, 무한반복 재생


<Super Star Dust>, <19×19> 2012, 아트스펙트럼 전시 전경, 삼성 미술관 리움


2011

<Bright TV> 2011, 14 인치 브라운관, 램프


<팔자시계> 2011,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서울

두 개의 단어가 있다. 왼쪽은 30분에 한 번, 오른 쪽은 1분에 한 번씩 바뀐다. 왼쪽 카드는 ‘사주’를, 오른 쪽 카드는 ‘운세’를 서술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를 보여준다. 24시간 동안 쉼 없이 보여주는 단어는 단 108개 뿐이지만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한 두 단어의 조합은 종종 ‘운명’으로 받아 지기도 한다.

<Fortune Timer> 2011, 플립장치, 34.5×9×12㎝


<디토디토디토> 2011,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서울

전시장 중앙에 줄지어 서있는 검은 회전문 다섯 개에는 ‘동감’이라는 의미의 ‘DITTO’가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문자의 의미는 희석되고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고의 반추 없이 “나도 그래”라는 말을 내뱉는 모습과 닮아있다. 주어진 상황을 무료히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나태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자 보편적 인식이 형성되는 나른한 과정을 보여준다.

<DITTODITTODITTO> 2011, 철, 분채도장, 가변설치


<슈퍼스타더스트>, 2011,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서울

검은 (벽)면 위에 별 모양(★)이 가득 들어찬 구형의 입체가 있다. 재료의 광택 유, 무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별들은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한다. 우주는 암흑물질로 가득하지만 반짝이는 별이 우주의 전부인 양 느낀다. 동선을 따라 바라보는 각도를 틀어 별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시각으로 잡아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주도 있음을 자각한다.

<Super Star Dust> 2011, 캔버스 천 위에 무광도료, 330×300㎝


<Super Star Dust> 2011, 캔버스 천 위에 무광도료, 330×300㎝


<The Rudolph> 2011,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서울

1945년 작 ‘Rudolph the red nosed reindeer’는 전 세계에 산타 이야기와 ‘루돌프 사슴 코’ 라는 캐롤송을 알린 애니메이션이다. 이 원작을   리터칭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로 서술 되도록 했다. 산타 클로스의 권유로 집을 나선 루돌프는 밝은 코 덕분에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한다는 원본 스토리는 리터칭을 통해, 루돌프의 코가 시간 순으로 점점 밝아지고 그에 따라 시간 순으로  동공 점점 사라진다. (70년 이상 지속된) 미국식 산타의 신화와 캐롤송을 소급하는 방식을 취한 이 영상은 과거를 재해석 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역사를 다루는 유효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The Rudolph> 2011, 싱글 채널 비디오, 9’ 45”


<The Rudolph> 2011, 싱글 채널 비디오, 9’ 45”


2010

<3-D TV> 2010, 14 인치 브라운관, LED 램프


<싸인> 2010, 몽인아트센터, 서울

어두운 방안에  핑크 빛 네온으로 쓰인 이 텍스트 작업은 색채의 달콤함과는 달리 모호한 회색 빛의 의미 범주를 가진다. 두 벽면과 맞닿은 모서리에 걸쳐 3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써진 텍스트 ‘RESPONDNABILITY’는 책임감을 뜻하는 ‘responsibility’를 ‘respond’와 ‘ability’로 해체하고 이것을 다시 ‘and’로 연결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분절된 단위에 의해 (비)의도적으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의미단위는 ‘DNA’이다. 확정된 개념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 불안정하게 쓰여 있는 텍스트를 제시하는 상황은 작업에 새로운 컨텍스트를 끌어들인다. 관객의 이동에 따라 텍스트는 연속선상에도 놓이게도, 분절되고 독립적인 각각의 단어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모호한 상관 관계에 놓이거나 불명확한 의문을 남기는 영역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임 있게 응답하는 것’과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그리고’ 혹은 ‘유전자’는 과연 무엇을 위해 속단적인 의미부여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일까.

<Sign> 2010, 네온, 가변설치


<Sign> 2010, 네온, 가변설치


<wobniaR> 2010, 몽인아트스페이스, 서울

전시장을 가로질러 설치된 유리구슬 커튼 작업 <wobniaR>는 관객의 이동경로를 가로 막고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Intervention> 연작(2006)과 맥락을 공유한다. 하지만 무심코 통과해 가거나 쉽사리 비껴가기 애매하게 연출된 상황은 한층 더 얄궂다. 주위에 생기는 작은 움직임의 영향에도 서로 부딪혀 산산조각 날 지 모를 수많은 유리구슬들은 투명한 만큼이나 연약하기 때문이다. 유리구슬 커튼을 기준으로 양분된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과 관객들의 입장은 고스란히 만 개의 유리구슬에 역으로 투사되고 있다. 다만 표피가 채색된 구슬들만이 존재하지 않는 무지개의 빛깔을 무한히 비추고 있을 뿐이다.

<wobniaR> 2010, 유리볼 10,000개, 가변설치


<배수로> 2010, ‘유원지에서 생긴 일’, 경기도 미술관

<배수로>는 기존의 장소, 즉 미술관의 건축적 구조 속으로 스며들어 그 장소와 더불어 삶을 영위하도록 제안된 작업이다. 경기도미술관의 경우, 주 출입구 방면의 녹지화된 수공간 주변을 따라 배수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미술관 주변을 오가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그들의 동선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존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제안된 <배수로>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크기의 구멍이 반복적으로 뚫려있거나 격자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는 배수로 덮개의 재질과 형태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새로운 혹은 낯선 시각효과를 유도한 작업으로, 여전히 배수로로서의 기능 역시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즉, 텍스트 형태로 치환된 구멍은 배수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텍스트가 담고 있는 개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각적 기능도 함께 수행한다. 이렇듯 띄어쓰기 없는 일련의 텍스트로 구성된 이 작업은 숨쉴 틈 조차 허락되지 않는 우리의 반복적인 일상의 단편을 반영하고 있다.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텍스트가 과연 미술관의 주변을 맴돌던 발걸음을 미술관 안으로 이끄는, 혹은 반복된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색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그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술관을 에워싸고 있는 ‘조금은 다른’ 이 배수로를 통해 ‘안락한 익숙함’의 지루한 반복 속에서 ‘낯선 익숙함’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과감히 직면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작업이 꿈꾸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단절의 행위’이다.

‘The Drain’ soaks through the architectural structure of the existing place, that is, the art museum and proposes to lead a life with that place. In the case of the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where the drain is placed along the waterway surrounded by the green landscape near the main entrance of the building, it catches the eyes of the visitors moving around the museum and at the same time guides actually the flow of their traffic. Accepting actively the existing elements and assuming faithfully the role of a drain, ‘The Drain’ brings, with a new or unfamiliar visual effect, a subtle change into the texture and form of the drain covers that show generally holes of the same size in repetition or are made up of lattice casting. The holes, in the form of text substitutes, assure the drainage and also accomplish the visual function of delivering the conceptual message contained in the text. This work, composed of a series of texts without any word spacing, reflects the fragments of our repetitive everyday life in which we are not even allowed moments for breathing. Is it possible that this text, found by accident in an unexpected place, attracts the visitors, passing by the museum, into the museum or constitutes a beginning of thought which can change the repetitive life? The answer is not known. However, making people perceive the ‘strange familiarity’ in the tedious repetitions of ‘comfortable familiarities’ through this ‘some different’ drain surrounding the museum and confront them with it, that is ‘the conscious and voluntary act of rupture heading towards another world’ my work is dreaming of.

<배수로> 2010, 코르텐 스틸, 경기도 미술관


<배수로> 2010, 코르텐 스틸, 경기도 미술관


2000-2009

<반달> 2009, ‘인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송도

<반달>은 반구의 형태로 재현된 달과 이 반 쪽짜리 달을 글자 그대로 서술하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 혹은 그 둘의 충돌이 발생시키는 유머와 아이러니의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감각적인 언어의 유희나 일반 상식을 뒤엎는 참신한 시각 이미지의 제시라기보다는 인식에 관련된 회의懷疑적 사고를 촉발시키려는 의지로 관심의 좌표축을 이동시키고 있다. ● 지구로부터 39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달은 육안으로 바라볼 때 그저 평평한 원형으로 ‘보일’ 뿐이지만, 반복적인 학습과 교육으로 둥근 구의 형상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과학적 사고에 기댄 ‘알고 있음’에 대한 우리의 맹신은 지금 스스로 분명히 ‘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 <반달>은 과거 지구는 둥글다거나,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돌고 있다거나 하는 주장을 펼치던 과학자들이 비이성적 선입견에 저항하며 과학적 근거를 증명하려던 노고와는 역으로, 고착화된 사고에 회의의 여지를 마련하려는 반어적 시도에 대한 갈릴레이식 독백으로 남는다.

The Half-Moon, 2009, ‘Incheon Digital art Festival’, Korea

The Half-moon, named after its eponymous hemispheric shape, is situated between the humor and irony generated from the gap or conflict between its visual image of a full-moon and the physical image associated with its title. However, the artistic intention to trigger a skeptical reaction or challenge our cognitive abilities is placed above the attempt to play upon words or a mere presentation of a visually unique image. While the moon—390,000km distant from the earth—looks like a flat circular shape seen from a distance with the naked eye, we know it is a sphere (thanks to elementary science class). Our blind leap of faith in this knowledge, dependent upon scientific evidence and theoretical thought that the moon is, in fact, sphere, is so strong as to disallow the slightest doubt about the shape of the moon—even though our optical experience of the moon tells us it is flat. Scientists and scholars since Galileo Galilei have struggled to demonstrate their scientific hypotheses against the irrational preconception that the moon is flat, also advocating that the earth is round and revolves around the sun. Contrary to their endeavors and such long-held wisdom, The Half-moon is a cheeky, anti-Galileo-like monologue that defers sarcasm in place of honestly skeptical responses against long-lasting fixed ideas.

<반달> 2009, 알루미늄, 아크릴보드, 램프, 90x90x45㎝


<반달> 2009, 알루미늄, 아크릴보드, 램프, 90x90x45㎝


<반달> 2009, 알루미늄, 아크릴보드, 램프, 90x90x45㎝


<The Windows> 2009, 토탈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the room, 서울

시각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는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로 인한 왜곡조차도 기억을 지배한다. 그러나 최기창은 이 익숙한 감각에 어긋난 조화를 하나 더 부여함으로써 일상의 정보를 비튼다. 4월 3일부터 26일까지 the room에서 열리는 <The Windows>에서 최기창이 취하고 있는 방법은 일상적인, 우리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각과 기억에 대한 인식을 분해하는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에서 일상의 사건에 주목했던 것과는 달리 최기창의 <The Windows>는 사건을 인식하는 그 순간 작용하는 감각들을 비틀어 놓는다. 일상적인 인식들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역으로 권태로운 일상을 비꼰다.

어둠 속에서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 연속적으로 터지는 스트로보 라이트의 시각 효과, 그리고 관객이 서 있는 공간에 퍼지는 옅은 안개의 공간, 여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유리창에 부착된 창 너머 세상의 정지된 찰나의 풍경은 이 모든 경험과 감각이 처연해질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식의 분해는 모호한 공간을 낳고 모호한 공간은 익숙한 일상을 분해한다.

최기창에게 있어 권태도 일상도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 가령 형광등이 켜지기 직전 몇 번의 섬광이 얼마간 우리 눈에 잔상으로 남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눈이 다시 형광등의 빛에 익숙해 지는 것처럼. 그 같은 순간적 경계의 상태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최기창의 권태이다.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서원석, 큐레이터

<The Windows> 2009, 토탈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the room 전경


<The Windows> 2009, 사진, 스트로보 라이트, 포그 머신, 비닐, 모션 센서, 가변설치


<The Windows> 2009, 사진, 스트로보 라이트, 포그 머신, 비닐, 모션 센서, 가변설치


<The Windows> 2009, 사진, 스트로보 라이트, 포그 머신, 비닐, 모션 센서, 가변설치


<The Windows> 2009, 사진, 스트로보 라이트, 포그 머신, 비닐, 모션 센서, 가변설치


<The Windows> 2009, 사진, 스트로보 라이트, 포그 머신, 비닐, 모션 센서, 가변설치


<Glass Door> 2006, Main entrance: 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 London

오가는 사람들로 늘 분주한 건물의 출입구를 선택한다. 이 출입구는 인접한 건물의 모퉁이를 돌면서부터 약 25미터. 14~5초를 걸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유리문을 밀면서 건물로 들어설 수 있다. 모퉁이를 돌면서 사람들은 첫 번째로 ‘무관심’의 단계를 거친다. 누구도 저 멀리 보이는 유리문의 존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의심’의 단계. 점점 가까워지는 유리문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잠시 의심한 후, 늘 보아왔던 유리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세 번째    단계에 그들이 도달하기를 나는 기대한다. 하지만 눈앞의 대상을 대수롭지 않게 소외시키는 그들에겐 이 단계가 끝이 아니다. 불투명해진 유리문이 열리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직면해야만 하는 ‘당황’의 단계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 출입구를 통과할 때마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부 혹은 내부 세상과의 접촉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반복적 간과’의 다섯 번째 단계가 여전히 남아있다.

‘보는 것’과 ‘본다고 느끼는 것,’ 혹은 ‘보았다고 기억하는 것.’ 어쩌면 우리는 ‘경험’과 ‘기억’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안다’라고 하는 불명 확함을 늘 확신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어딘가로 조금은 분방한 상상의 여지를 넓혀가는 과정, 거기에 유리문이 존재 한다.

An entrance of the building, always busy with people going in and out, is selected. This entrance is placed in a location which can be reached by 14 to 15 seconds’ walking, at some 25 meters’ distance from the corner of the adjacent building and by pushing a glass door you can get in the building.

Turning around the corner, people go through the first stage of ‘indifference’. Nobody is interested in the existence of the glass door they see far in the distance. The stage 2 is the ‘doubt’. I expect them to reach the third stage and have ‘confidence’, thinking the glass door is not definitely the one they have always been seeing, after a short moment of doubt aroused by some subtle changes perceived in the door as they get closer. However, as they have no regard for excluding the objects in front of their eyes, this is definitely not the end. The stage of ‘embarrassment’ is waiting, confronting them with an unexpected situation the moment the opaque glass door opens, followed by the fifth stage of ‘repetitive overlooking’ which lay them wide open to the contacts with the external or internal world, each time they unknowingly pass through this entrance.

‘To see’ and ‘to feel seeing’, or ‘to remember having seen’. We might have been gaining confidence in the uncertainty of ‘knowing’, oscillating incessantly between ‘experiences’ and ‘memories’. The glass door exists there, in the very process of expanding the margins of somewhat liberal imagination somewhere within this mechanism.

<Glass Door> 2006, Main entrance: 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 London


<Glass Door> 2006, Photo print, Dimension variable


<Glass Door> 2006, Photo print, Dimension variable


<Glass Door> 2006, Photo print, Dimension variable


<Glass Door> 2006, Photo print, Dimension variable


<Finger Food> 2006, Single channel video, appx.10min.

4개국(이태리계 영국인, 헝가리계 영국인, 일본인, 한국인) 사람이 모여 한끼의 식사를 하는 <Finger Food>는 ‘한 개의 손가락만 이용한 다’,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직접 먹지 않는다’라는 세 가지의 단순한 룰 이외에는 사전에 짜여진 각본 없이 진행되는 싱글 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서로의 손가락을 모아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과도 같은 제스처로 촬영이 시작되고 눈빛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면서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시를 먹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활발한 눈빛 교환은 음식의 이동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방해하기도 하 는 오해 의 요소로 작동된다. 옮겨진 음식은 순간의 판단으로 불 특정한 누군가의 입으로 향하고 100% 타의에 의한 식사는 의심과 당황, 거부와 합의 그리고 깨물림과 빨림, 손가락의 깊은 삽입으로 인한 통증 등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범벅 된다. 마지 막 디저트로 나오는 뜨거운 커피를 돌려 마시는 장면은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커피를 모두 마신 후 마침내 네 개의 손가락 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모으는 의식으로 파란만장한 식사를 마친다.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상물 <Finger Food>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구성원들 사이에서 생기는 자발적 통합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Finger Food’, gathering persons of 4 different nations(Italian British, Hungarian British, Japanese, Korean) for a meal, is a single channel video running with no prearranged scenario except three simple rules: ‘only one finger can be used’, ‘no talking’, and ‘no one can eat by himself’. The video starts with the ceremonial gesture of fingers joined together, which announce the beginning of the meal, and the participants eat appetizer and main dish checking each other’s intentions by exchanging eye. The exchange of glances is made active in the process, helps the movement of the food and sometimes lies in the way acting as an element of misunderstanding. The food is moved, on an instant judgment, toward an unspecified mouth and the meal, taken 100 percent against each one’s will, is mixed with an outburst of laugh in some unexpected situations that are mingled with doubt and embarrassment, refusal and agreement, bite and sucking, pains caused by a finger deeply inserted. The scene, in which a hot coffee is shared as the last dessert, provokes an extreme tension and at last the fingers complete the turbulent meal with the same ceremony of joining as in the beginning. The single channel video ‘Finger Food’ shows the process of voluntary integration occurring among members who have the same goal, dealing with episodes happening in the process of solving a meal.

<Finger Food> 2006, Single channel video, appx.10min.


<Finger Food> 2006, Single channel video, appx.10min.


<Desire flower> 2003, Acrylic on panel, 150×150㎝


<Desire flower> 2003, Aquatint, etching 60×60㎝


<Desire flower> 2003, Aquatint, etching 60×60㎝


<Desire flower> 2002, Acrylic on panel, 200×200㎝


<Desire flower> 2002, Acrylic on panel, 200×200㎝


<Desire flower> 2002, Drawing on vinyl sheet with a soldering iron, 400×400㎝


Detail cut of Desire flower


<Desire flower> 2001, Acrylic on panel, a set of antlers, nails, 400×350㎝


Detail cut of <Desire flower>





<Sad paradox> 2001, Dried root, manual forklift, candle, and terra-cotta horses, Dimension variable


<Sad paradox> 2001, Dried root, manual forklift, candle, and terra-cotta horses, Dimension variable


<Sad paradox> 2001, Dried root, manual forklift, candle, and terra-cotta horses, Dimension variable


<열 두 손가락> 2001, Aquatint, line etching, chine-colle, 200×280㎝


1990-1999

<사냥꾼의 선택> 1999, Aquatint, etching, chine-collé,  120×90㎝


<뒤바뀐 머리> 1998, Aquatint, etching, chine-collé,  1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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